[#3] 내가 연출자 싸이를 좋아하는 이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나는 싸이의 엄청난 팬이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자 연예인이자, 뭐 범주가 어떻든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들은 여러가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연출자이자 브랜딩 전문가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연출자.

2023년 연말에도 싸이 콘서트를 다녀왔다. (이번이 22번째 공연이었다.) 올해도 3일 공연 중 이틀에 다녀왔다. 자주 받는 질문 중 ‘똑같은 공연을 이틀 연속 보면 뭐가 달라?’ 하는 질문에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도 그 경험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올해는 특히나 큰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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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스타트업계에서 린이나 애자일을 많이 외치고, 고객중심, 빠른 피드백과 조정을 강조하는데 그게 마치 테크스타트업계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할 때면 이따금씩 불편함을 느낀다. 실제로는 다른 산업군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꽤나 많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이 그랬다.

첫날(2일차 공연)에 공연을 보면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난다. 이번 공연은 4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부에서부터 싸이가 편곡에 관한 멘트를 하면서 2부의 시작을 EDM으로 편곡된 2곡으로 열었다. 매년 올나잇스탠드에서는 다양한 편곡과 다양한 연출을 경험하는데 모든 편곡과 연출이 완전히 좋게 다가온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번 2부의 EDM 편곡 2곡이 그랬다. 뭔가 흥이 덜 오르는 기분? 친구는 아 원곡이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말을 했다. 나도 동조했다. 이후 3부의 락 편곡, 4부의 힙합 편곡은 모두 매우 좋게 다가와서 끝나고도 2부 편곡이 살짝 아쉽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둘째날(3일차 공연)이 되었다. 불과 몇시간 전 한 차례 격전을 치뤘기 때문에 오늘은 언제 어떤 곡이 나오겠다는 정보를 알고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놀랍게도 셋리스트 순서가 달라졌다. 어제의 2부 EDM 편곡이 안 나오고 락-힙합-EDM 순으로 진행되었다. 힙합 편곡이 이번 올나잇스탠드 공연의 하이라이트 격이었는데, 중간에 힙합편곡의 3곡을 깔고 그 다음에 EDM편곡 2곡이 이어지니 오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가장 흥이 올라있는 시점에서 더 시너지를 내는 듯한 느낌을 받아 3일차 공연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바로 메모를 해두었다.

물론 2일차 공연이 끝나고 어떤 피드백과 어떤 의사결정 과정에 의해 3일차 공연의 셋리스트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엄청난 인사이트를 받은 것은 이 큰 공연의 셋리스트를 과감하게 하루만에 바꾼 결정과, 그에 따른 빠른 조정이었다. 이게 린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로 치면 프로젝트가 런칭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은 다음 하루만에 큰 변동사항을 가져가는 것, 특히나 처음의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의사결정을 빠르게 뒤집는 결정일텐데 그 결정부터 동반되는 수고스러운 액션들까지 고려해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셋리스트에 따라 스태프들의 무대 세팅과 동선이 달라질 것이고, 공연 자체의 호흡도 다를 것, 200명이 넘어가는 스태프와 출연진들이 이를 인지하고 하나의 팀으로서 조정된 공연을 만들어가야 할텐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한 빠른 피드백루프와 과감한 조정은 싸이가 가수이기 이전에 왜 뛰어난 공연 연출자인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대목이었다고 느꼈다. 나중에 만나면 이유를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