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트 프레스 수비에 걸렸다

풀코트 프레스 수비에 걸렸다

루나-테라에 당해버린 뒤, 위기대처능력에 대한 고찰

풀 코트 프레스(Full Court Press)는 공격 팀의 인바운드 패스로부터 지역수비로 압박을 가하는 수비 전술로, 볼 맨을 사이드로 가게 해서 더블 팀을 시도하며 나쁜 패스를 시켜서 인터셉트를 시도한다. 만약 실패할 때는 전원 원위치로 돌아와서 2차 수비를 한다. 실패하더라도 되도록 많은 움직임을 하게끔 만들어 공격 제한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전술이다.

최근에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판을 뒤흔들고, 크립토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루나-테라 사태죠. 저 또한 강한 믿음을 갖고 투자해왔었습니다. 저 역시 많은 분들처럼 처참히 실패했고 매우 큰 패배감을 맛보았습니다.

Disclaimer : 루나-테라 사건이 터지기 전 위험의 잠재 신호는 무엇이었는지, 이후 대처는 어떠한지에 대한 글은 숱하게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 루나/테라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투자의 패착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인데다가, 상황을 파악하여 인사이트를 던질만큼 식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제 글은 정보를 찾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현재 맞이한 위기 극복을 위해 제가 가장 익숙했던 순간에 대입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현시점 제 마인드셋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농구를 할때 볼핸들러이자 포인트가드로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풀코트 프레스에 걸렸을 때이다. 숱한 당황의 경험 끝에 이제는 대부분의 풀코트 프레스를 어떻게 뚫어야할지에 대해 감을 잡은 상태이긴하지만, 그럼에도 한번씩 더 정교한 프레스를  구사하는 팀을 맞닥뜨리면 당혹감은 물론이고 깊은 패배감까지 들기도 한다.

풀코트 프레스라는 전술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공격의 시작지점부터 볼핸들러에게 강한 압박을 걸고, 볼핸들러가 당황하여 패스를 하기 위해 공을 잡는 순간 또 다른 수비수가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외 수비수들은 패스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했다가 스틸하는 함정 수비(Trap Defense)를 펼친다.

프레스 디펜스로 NCAA를 장악했던 16년도 빌라노바 대학

근본만화 슬램덩크에서도 북산이 산왕공고의 엄청난 프레스에 막혀 큰 위기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세 좋던 북산이 산왕의 벽을 느끼게 되는 순간인데, 현실 농구에서의 풀코트 프레스 프레스 또한 비슷하다.

풀코트 프레스를 들고 나와 3분 안에 경기를 끝낸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볼핸들러에게는 풀코트 프레스만한 공포의 대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공포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2. 대응책이 안 보인다.
  3. 발버둥치며 대응할수록 더 수렁에 빠진다.

대개 경기 중반, 2~3쿼터 정도 자유투를 성공시키고 난 이후,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프레스. 작전타임을 걸기 전까지 무기력하게 세 번, 네 번 프레스를 연속으로 당하고 나면 순식간에 점수차가 뒤집히거나 벌어져있다. 멘탈이 그대로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냉정한 상황판단과 경기 운영, 조율이 핵심인 볼 핸들러들에게 멘탈이 무너졌다는 것은 위 슬램덩크 산왕공고 감독이 말하듯, 승부가 이미 난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악명 높은 프레스를 농구에서 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풀코트 프레스가 과연 만국공통, 모든 리그에서 압도적인 전술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NBA(혹은 KBL)를 많이 보다 보면, 막상 풀코트 프레스 전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볼 핸들러에게 공포감을 안겨다주는 전술임에도 왜 많이 사용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풀코트 프레스가 가장 많이 사용 되는 곳은 어느 리그일까?
바로 중고등부 리그와 미국 NCAA 대학리그, 다시 말해 프로 레벨 이전 리그이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이 곳의 선수들이 위기대처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훈련으로 단련된 NBA, KBL 등의 프로리그에서도 풀코트프레스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볼 수는 없지만, 프로리그의 선수들은 이미 어떻게 프레스를 파훼할지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아마추어 리그에서 풀코트 프레스를 꺼내드는 순간, 그 효과는 거의 재해에 가깝다.

풀코트 프레스를 깨는 방법은 Back to Basic이다. 본래 줘야 될 사람에게 패스를 하고 처음 패스를 받은 선수는 멈추지 않고 속도를 살려 중앙으로 이동하며 전진해있는 팀원에게 또 패스를 한다. 팀패스 훈련에 나올법한 기본 중 기본이다.

그렇게 기본적인 움직임에도, 사람이 당황하면 놀랍게도 이제껏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려고 하게 된다. 훈련 때 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패스를 하고,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을 과감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모두 무리한 대응이 된다.

기본이 중요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 직관적으로 다시 말하면, 풀코트 프레스를 깨는 솔루션은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

풀코트 프레스에서 압박이 시작되는 타이밍이 있다. 바로 볼핸들러가 '공을 잡는 순간'. 공을 잡은 순간, 실행가능한 모든 옵션은 사라지고, 정적인 패스만이 남는다. 그리고 공을 잡은 선수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팀원들에게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공을 어떻게 안 잡아" 라고 할 수 있지만, 포인트가드에게는 프레스가 아닌 평소와 같은 상황에서도 공을 잡는 것은 지양해야할 행위로 취급된다. 항상 드리블을 치거나 패스를 할 수 있는 이지선다 옵션을 열어놓아야 하는데, 공을 잡는 순간 선택 가능한 옵션이 하나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엘리트 농구를 할 때, 공 잡았다고 코치에게 작전판으로 한 대 맞고 나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보니, 다 이유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공을 잡는 순간 두 발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제약이 가득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코트 한 중간에서 공을 잡아버리는 순간, 포인트가드에게 결정 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공을 잡는 것'이 이렇게나 위험하다.

공을 잡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멈추지 않아야 한다.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아진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별 수 있나. 농구 경기에는 '작전타임'이 있다. 위기가 닥쳤다는 판단이 들 때는 재빨리 작전타임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과 '공을 잡지 않고' 치고 나가야 한다는 점을 빠르게 상기시켜야 한다.


이제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보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적어도 내 역량에서는) 위기가 찾아왔고, 한 생태계가 무너진 마당에 대응책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숏을 치며 돈을 벌고 있던 상황에도 루나 개수를 늘려보겠다는 무리한 시도까지 했었다. 나에게도 공포가 찾아왔었고, 무력함도 느꼈다. 공포의 일주일이 지났다.

프레스로 한 4~5점 먹힌 상황이다. 나는 재빨리 작전타임을 불렀다. 그리고는 풀코트 프레스를 당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오늘 글은 작전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다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다음 이어지는 공격에서 공은 섣불리 잡지 않겠다.

나 뿐 아니라 이번 일로 금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피해가 상당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서서히 믿음을 가져가면서 더욱 이 생태계에 긍정적인 기대를 품게 되었을텐데, 일이 터진 뒤에 온갖 뉴스와 채널들에서 그저 '대형 사기에 당한 피해자' 정도로 매도되니 그 또한 속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나 스스로 마인드셋을 다시 다잡고자 하는 목적이 컸기에 익숙했던 농구의 개념을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글의 마무리 역시 같은 결에서 예상치 못한 풀코트 프레스를 겪은 모두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며 마무리한다.

풀코트프레스는 보통 2, 3쿼터에 많이 쓰는 전술입니다.
아직 4쿼터도 오지 않았으니, 작전타임 한 번 부르고 하던 대로 합시다.